윤회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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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들은 그 불교를 공부하면서 불교는 윤에서를 인정하는 종교입니까, 아니면 윤회 없다고 하는 종교입니까 하고 물어봐요. 그러면 이제 여러분, 신기하지 않나요? 수많은 이제 불교를 가르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눈에 있다. 윤회 가본 사람이 있다. 또 자기의 전생을 본 사람들이 있다 하고 막 이렇게 증명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이제 막 윤회가 진짜 있다라고 증명할 만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렇게 설명되기도 해요.
윤회에 대한 다양한 견해
그러면서 윤회는 반드시 있다. 그거를 이제 막 있다라는 것을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의 상대에서 왜 있는지를 막 설명하고 이게 맞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가 하면 반대로 눈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 틀렸다. 윤회는 없다. 왜 윤회가 없는지 가르쳐 줄게 하면서 윤회는 이래서, 이래서, 이래서 없는 거야라고 해서 윤회가 없다라는 얘기를 막 설하는 그런 분들도 많이 계세요.
그럼 이제 우리 공부하는 분들은 헷갈리는 거예요. 윤회 있다고 하는 분도 공부 많이 하신 분이고 훌륭하신 분이신데 있다고 하시고 은혜 없다고 얘기하는 분도 얘기 들어보면 맞는 말 같고 훌륭하신 분이고 진짜 그럴싸하고, 그러다 보니까 이게 편인 나나 가지고 신도님들 사이에서 일반 분들 사이에서 윤회 있다라고 얘기한 사람 밑에는 댓글이 이 완전히 잘못된 사람이다. 윤회를 없는데 있다고 했다고 막 욕하는 댓글을 본. 적이 있고요. 또 윤회가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윤회가 왜 없냐 하고, 너 이러고도 불구하는 사람이냐 하고 이런 댓글도 본 적이 있어요.
이게 이제 우리 공부하는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 안 되는 말이잖아요. 왜 머리로는 옳은 거 아니면 그런 거 이거 아니면 저거 어떤 견해를 딱 쥐어야 되거든요. 어떤 견해 이게 맞냐 저게 맞냐 둘 중에 하나 견해를 탁 줘야 되잖아요. 근데 그것을 그 종교에선 어떻게 바라보냐 하는 결과를 탁 드러내 줘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불교에서 보는 견해는 어떤 거냐 이거를 딱 내야 된다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불교에는 그 어떤 견해도 없습니다. 모든 것에 대한 견해가 없는게 불교에요.
세상에서 얘기하는 모든 것들을 아무래도 종교 어떤 종교를 가르치는 지도자라면 예를 들어 이런 거죠, tv에서 뭐 낙태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십니까? 죽음 이유가 어떤 견해를 가지십니까? 이런 다양한 세상 사람들의 궁금증에 대해서 올바른 훌륭한 종교 지도자라면 자기 종교에선 이렇게 설한다라는 것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우리는 배웠을 거예요.
근데 그것은 학문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그럴 수 있어요. 불교는 그 모든 주의 주장 그게 아닙니다. 그것을 벗어나 있어요. 그래서. 불교는 수많은 종교 가운데 하나의 종교가 아닙니다. 사실은 이종교 저 종교에선 이걸 주장하고 저격하는데, 불교에서 뭘 주장하느냐. 불교는 주장하는게 없어요.
그게 중도에요. 중도 중도라는게 애매하지 않아요. 이거다라고 얘기도 안 하고 저거다라고도 안 하잖아요. 이것도 아닌데 그것이 아닌 것도 아니다. 저것이 아닌데 그것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렇게 중도라고 설한단 말이죠.
왜 그럴까요. 그 부처님 가르침 초기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최초의 가르침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래서 부처님의 원음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의 원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알려져 있는 경전이. 경전 가운데 하나가 수탄이 파타거든요. 수탄이 파타의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성자의 자세
어떤 교리나 신조의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그것만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주장하면서, 이것만이 가장 뛰어나다라고 하면서 다른 견해는 열등하다고 폄하한다. 그런 사람은 논쟁을 뛰어넘어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성자는 나에 대한 개념을 모두 버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견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어떤 견해나 지식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논쟁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어느 한쪽을 따르지 않는다. 그에게는 독단적인 그 어떤 견해도 없다. 성자는이 세상이나 저 세상 어디에서도 이것 아니면 안 된다라고 하는 극단적인 견해가 없다. 그에게는 그 어떤 교리나 신조가 주는 위안이 더 이상 필요가 없으며, 교리나 신조가 그를 사로잡지도 않는다. 그게 바로 성자고 여기서 말하는 성자가 바로 부처님이란 말이에요.
놀라운 얘기 아닌가요. 우리는 불교를 어떤 주의 주장이라고 생각해요. 불교는 어떤. 불교에서 주장하는 교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불교는 그 어떤 교리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설하고 있는 모든 교리는 그 교리를 설하고 주장하기 위해서 그 교리를 선하는게 아니라, 모든 것은 실제가 아니고 주장할 게 아니고 집착할 게 아니고 붙잡을 것이 아니어서 어디도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무주법, 어디도 머물 수 없어. 무집착, 어디도 집착할 게 없어. 실제가 아니니까, 공하다. 어디도 발 디딜 곳이 없으니까. 공하다라고도 자르하였고, 연기법, 어떤 것도 실체가 아니야. 인연따라 생기고 사라질 뿐이야. 무아는 실체가 없어. 인연따라 생기고 사라질 뿐인데, 내가 어떻게 있겠어. 공이라는 게 주의 주장입니까. 아무것도 없다는 게 공이에요.
불교에서 설하고 있는 모든 교리는 교리가 아니에요. 그래서 불교경전에서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죠. 부처님께서 평생을 법을 설하셨지만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고 설하셨고요. 팔만대장경이 전부 다 임시방편이라고 설하셨어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 팔만대장경을 버려도 되는 말이에요. 이런 놀라운 일들이 불교에서는 벌어진다고 말이죠. 그 스님은 그 부처님 목부로 된 부처님을 겨울에 남의 절에 가서 자다가 너무 추워서 불을 뗄 수 없는 겨울에 목부를 떼 가지고 훈훈하게 살았다는 말이에요. 그건 다른 종교 같으면 있을 수 있는 얘기라는 말이죠.
불교는 그걸 상이라고 안 했다는 말이죠. 모든 상을 상이라고 하지 않는 말이죠 확실하게. 그래서 이와 같이 불교에서는 그 어떤 주요 주장이 없어요. 이것이다 하고 저것이다라고 딱 정해진 어떤 고정된 실체적인 무언가를 내세우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것이죠. 그 어디에도 탁 발디 될 곳이 없도록 해버립니다.
교리에 대한 이해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우리가 이 교리에 안주하거나 저 교리에 안주하거나, 여기에 이 교리를 탁 쥐고 있으면서 '아, 내가 죽고 나면 우리 부처님께서 나를 끝까지 책임져 주실 거예요'라고 우리가 교리로 가르친다 하면, 그거를 탁 믿고 있으면 얼마나 안심스럽겠어요.
'아, 내가 죽고 나면 부처님 품에 가겠구나' 얼마나 안심스럽겠어요. 그런데 깨닫고 나면 그런 교리가 주는 안심이 필요가 없어요. 삶의 실상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게 필요가 없습니다. 지옥 가지 않으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요, 극락 가려기를 쓸 필요도 없어집니다.
진실에 눈을 떠야만 모든 것이 확연해지는 거예요. 그 누구에게도 기대고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이나 어떤 특정한 신에게 기대고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부처가 되고, 자기가 신이 되고, 자기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아구나라는 사실에 문득 눈 뜨는 거예요.
'나를 구제해 줄 누군가가 언젠간 오겠지'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 불교에서 뭘 깨닫느냐, 불생불멸을 깨닫는 겁니다. 내가 정말로 불생불멸한다는 걸 깨닫는 거예요. 진짜 자기는 죽지 않아요. 진짜 자기는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근데 우리는 허상에 가짜 자기만을 진짜 자기라고 착각하면 살았다 보니까 오온을 나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보니까 '내가 늙을까 봐, 내가 병들까 봐, 내가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죽고 나서 지옥 가면 어쩌지' 이거는 자기 생각이 만든 어떤 사상을 쥐고 있는 거 아니에요.
'죽고 나서 지옥 갈 것이다'라는 생각을 자기가 만든 거잖아요. 자기 생각에서 나왔잖아요. 죽고 나서 어디에 갈지 영원하다라는 것도 생각이죠. 죽고 나면 끝이다라는 것도 생각이죠. 어떤 죽고, 모든 종교는 죽음 이후를 설해 줘야 돼요. 왜 중생들은 두렵거든요? 죽음 이후가 그러니까 모든 종교는 종교마다 설하고 있는 죽음 이후가 있어요.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 죽고 나더라도 우리 신께서 책임지신다, 우리 부처님께서 책임지신다 하는 어떤 선이 있어요. 그걸 설명을 딱 해주면서, 거봐라 죽고 나도 부처님께서 다 극락세게 데리고 가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게 확실하지, 믿어라. 이렇게 하면 우리는 편안하게 안심할 수 있단 말이죠.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세요, 그거는 어떤 생각을 믿은 거죠? 내가 이 종교에서 말하는 생각을 믿든, 죽음 이후를 설명하는 생각을 믿든, 저 종교에서 죽음 이후를 생각 설명하는 생각을 믿든, 그러다가 어느 날, "아 이게 아닌 거 같아. 난 저 정도에서 말하는 게 더 맞는 거 같아." 그래서 또 다른 종교를 믿든, 전부 다 뭐예요? 자기 생각일 뿐이지요. 생각이 믿기로 작정한 것일 뿐이죠.
그게 진짜인지 한 번이라도 검증된 적이 있습니까? 죽음 이후를 갔다 온 사람의 실제, 그걸 검증하고 와 가지고 설명해 준 사람이 있냔 말이에요. 그거는 자기 생각일 뿐이에요. 자기 생각이 검증한 걸 뿐이에요. 부처님께서 죽음 이후에 대해서 아무리 완벽하게 설해 놓으셨더라도, 그거는 하나의 생각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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