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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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각에는 이해가 안 되죠. 왜 자살을 하지? 의사가 안 맞으면 딴 병원 가면 되지. 만약에 딴 병원도 안 맞으면 의사 안 하면 되지 싶잖아요. 의사일 정도의 머리면 딴 거 뭐든 못해 싶잖아요. 그런데 의식이 분별심이 탁 사로잡히게 되면 그게 나라고 생각해요. 우리 생각에는 한 발짝 떨어져서 그 사람을 보니까 보여요. 이 사람이 어디 갇혀 있는지를 의식의 감옥에 갇혀있구나가 보이는데, 그 사람은 안 보여요.
내적고립의 심리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냐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나를 의사 하도록 가르쳤고, 이렇게 이렇게 공부하도록 가르쳤고, 나는 이거 안 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이거 아니면 절대 내 인생이 무너지는 내가 여태까지 살아났던 삶과 의사라는 그것이 나라고 생각해요. 동일시예요. 그게 무너지면 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부모님과 나를 동일시해서 부모님이 실망하는 건 난 죽어도 못 봐요. 저는 안 되면 부모님이 실망할 수도 있어요. 나이 서른 마흔 됐는데도 부모님 때문에 실망하는 거 못 보겠다고 해서 결정 못 내리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럴 필요 없단 말이에요. 근데도 갇혀 있으면 그 틀에 갇혀요. 그럼 그 틀 속에서 못 태어나와요.
그래서 여기서 내가 못 버티면 나는 죽어야 되는구나 라고 아는 거예요. 전혀 다른 가능성. 부모님이 말 안 들을 가능성, 이게 내 인생에 없는 거예요. 그 선택지가 없어요. 부모님은 나에게 절대다라는 그 틀에 갇혀 있으면,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그런 분들이 계시다니까요.
마마보이가 40, 50 넘어서까지 마마보인 분들이 계세요. 실제로 그 틀에 갇혀 있으면, 그걸 못 깨요. 이 직업이 나야라는 틀에 갇혀 있으면, 그걸 못 깨요. 그걸 그만두고 나가서 그냥 편하게 살면 되는데, 그걸 못해요. 그게 자기 분별이 만들어 놓은 감옥이거든요. 자기 분별이 만들어 놓은 감옥에서 내가 난 이렇게 살아야 돼. 난 저렇게 살면 안 돼. 이거는 더 가져야 되고 저건 버려야 돼하는 그 분별이 만든 거잖아요. 그 취사 간택.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바빠요. 할 일이 많아요. 인생에서 해야 될 일이 많잖아요.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이것도 가져야 되고 저것도 가져야 되고, 이 목표도 달성해야 되고. 할 게 많아요. 또 내 인생에 싫은 사람들. 이 사람은 좀 없애야 되고 저 사람도 밀쳐내야 되고, 이런 건 좀 없애야 되고 좋은 것만 있었으면 좋겠고 하는 거. 그런 게 많잖아요. 그게 나를 괴롭히지 않나요?
내 머릿속에서 내 분별심이 만든 취사 간택 기준. 더 가져야 되라는 기준. 없어져야 돼 하는 그 기준. 내가 만든 그 분별심. 그게 나를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그게 우리를 감옥에 가두지 않았나요? 그걸 무승자박이라고 그래요. 포승줄이 없는데 스스로 갇힌다. 자기가 자기를 가둔단 말이에요. 자기가 만든 분별의 감옥에. 그 누구도 여러분을. 그 누구도 가두지 않았어요. 자기가 가둔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가스라이팅 고찰
우리 요즘에 가스라이팅이라는 말 많이 하잖아요. 이게 실제 상대방이 나를 가스라이팅 했어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나 믿어 가지고 내가 내 스스로 가스라이팅 당한 거예요. 거기서 노연할 수 있는 건 나예요. 나만이 할 수 있어요. 그 누구라도 어떤 분들은 나는 내 인생에 이혼은 없어. 이혼하는 거는 최악이고 이혼하는 건 사회의 어떤 낙오자가 되는 거고 이혼이라는 건 내 인생에 없어라는 게 분별로 쥐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예를 들어, 예를 들면 뭐, 과거에 부모님이나 누가 이혼한 걸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든지. 그래서 나는 죽어도 이혼은 안 할 거야. 이런 고정관념을 가질 수도 있겠죠. 예를 들면 근데 옛날 어르신들 중에는 죽어도 이혼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에게 욕먹는다는 생각 내지는 이혼은 죽어도 하면 안 된다는 생각 이혼하면 나는 어디 나가서 뭐도 할 수 없을 거야.
나는 돈을 벌 수 없을 거야. 그리고 또 남편이 가스라이팅을 한 거예요. 너는 내가 있으니까 너 같은 사람 내 데리고 살지. 넌 내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넌 어디 가서 죽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이걸 계속해서 했단 말이죠. 그 생각을 믿었어요. 남편이 때리고 욕하고 그래도 버티고 살았단 말이에요. 이혼이라는 건 아예 범죄 없었어요.
근데 너무 괴로워 죽을 것 같으니까 불교 공부를 하다가 이 본문을 듣다가 나름대로 나름대로 자유로워졌어요. 근데 그러고 났더니 이걸 해탈이라고 하는군요. 어떤 해탈이 있는데요? 여쭤봤더니, 와, 스님, 제가 남편으로부터 해탈했어요. 어떻게 해탈하셨어요? 왜 이혼이라도 하시게요?
그랬더니 이혼 뭐, 그거 할라고 할 수도 있고 안 하려고 안 할 수도 있어요. 이혼을 하려고 할 수도 있고 안 하려고 안 할 수도 있어요. 아, 내가 이혼하면 나는 절대 안 되고, 난 이혼하면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아, 이거, 그게 아니었구나, 내가 만든 분별에 내가 갇혀 있었구나.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라는 취사 간댁심에 분별심에 내가 딱 사로잡혀 있었던 거구나. 평생을 그러고 살았구나. 이게 가스라이팅이구나. 하루는 눈빛을 가리지 않고 이혼을 하려고 할 수도 있고, 안 하려고 안 할 수도 있어요.
하루는 눈빛 초롱초롱하게 뜨고, 남편 딱 불러놓고 늘 남편이 뭐라 하려면 귀가 죽어 있다가 딱 불러놓고 앉아가지고, '당신, 내 말 똑바로 들어, 손짓 한 번만 더 해, 욕 한 번만 더 해. 나 이제 가만히 있지 않아. 나 나가서 살 거야.' 진짜로 농담 아니야. 나 진짜 이혼한다 농담하는 거 아니다. 근데 내 기회를 주겠다, 당당하게 얘기했대요. 그런데 이분은 이 얘기하고 이혼할 각오하고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깜짝 놀랬대요. 남편의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을 처음 봤대요. 이렇게 약간 나약해지는 모습을 처음 봤대요. 너무 단호한 모습을 보니까 이 사람이 깜짝 놀란 거예요. 이 사람이 요즘에 그렇지 않아도 남편 입장에서 이 사람이 요새 뭔가 좀 달라진 게 느껴지니까 좀 이상했대요.
이 사람 왜 이러지? 왜 저렇게 내 앞에서 주눅도 안 들고 뭔지 모르게 느낌이 달라졌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얘기하니까 이분이 막 당황을 한 거예요. '고사님이, 그런데 이 고사님이 그때부터 행복이 찾아온 거예요. 남편이 그때부터 잘해주기 시작하고, 당신도 남편에게 잘해주고, 그러니까 이제는 이혼 굳이 할 필요가 없단 말이에요. 할 수도 있지만, 할 필요가 없단 말이죠.
자유로운 삶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이게 같이 살면서도 자유로운 거구나.' 이런 얘기를 어떤 고사님이 와서 전에 한 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하는 말이 이혼하라는 얘기 아니죠. 그렇죠? 그런 얘기 아니에요. 어떤, 아무리 옳다 그러다는 생각도 그걸 고정된 실제적인 어떤 걸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건 자기가 만든 분별도 있지만, 이 사회에서 시대가 만들어 놓은 그런 분별들이 있어요. 고정관념들이 있어요. 그게 다 분별심이에요.
인도에서는요, 옛날에 근대까지도 사티라는 제도가 있었어요. 여자가 인도에서는 여자의 지위가 아주 낮았어요.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그랬잖아요. 제가 천도지하다 보면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이 두 분, 세 분인 분 지금도 계세요. 옛날 할아버지들 중에 이게 뭐지? 옛날에는 이해가 안 됐어요. 나중에 보니까 할아버지 한 분이 한 집에 두 분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경우가 몇십 년 전만 해도 있었어요.
사티아는 제도가 뭐냐면, 여자의 지위가 너무 낮아서 남자가 죽잖아요. 그러면 여자가 화장할 때, 그 불길에 뛰어들어서 같이 죽지 않으면, 아주 저급한 여자, 내지는, 혹은 '내가 뛰어들겠다' 해서 뛰어들겠다 이런 마음을 내지 않으면 그 집안 전체가 약간 무시당하고 이런 어떤 분위기. 그래서 그 엄마의 부모들이 자기 딸 보고 '야, 네 남편 죽었는데, 사티 해야지' 자꾸 부추기는 거예요. 그래야만 우리 집에 명예와 권력이 권위가 산다.
그러고 나서 이 사람이, 딸아 죽고 나면, 이 사람은 신으로 추앙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그게 전통이었단 말이죠. 그 어리석은 생각이,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단 말이죠. 그거는 말도 안 되는 분별심이잖아요. 근데 그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게 얼마나 많아요. 사회 곳곳에, 나라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전통들이 있잖아요.
아프리카 같은 데는, 제가 지금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어린아이들,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너무 충격적인 어떤 가혹한 행위를 하면서, 그게 전통이니까 하는 거예요. 그걸로 합병증이 오고, 이런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전통이라고 시키는 거예요.
그게 하나의 집단적인 분별 의식이란 말이에요. 분별심,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이거는 옳은 거야, 저건 틀린 거야라는 거. 전통이라고 해서 부처님께서 그랬잖아요. 전통적으로 내려온 거라고 해서 무조건 다 옳다고 여기지 마라. 권위 있는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지 마라. 그 어떤 고정관념, 전통, 권위, 그 어떤 것도 다 분별이란 말이에요.
생각이란 말이에요. 집단 무의식, 집단적인 어떤 생각들이 모이고 모이면 그게 고정된 절대적인 신념인 것처럼 내려온단 말이에요. 그런 건 실체가 없어요, 실체 하지 않아요, 실체적인 게 아니에요. 어떤 생각도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다 분별의식일 뿐이에요. 개인적인 분별의식도 있고, 집단적인 분별의식도 있어요.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예요,
그 생각으로부터의 자유예요. 그 모든 분별로부터의 자유, 그게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자유에요. 모든 것으로부터 어떤 것도 나를 가두지 못해요, 감옥에 가두지 못해요, 어떤 분별도 나를 가두지 못해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풀려나는 자유에요. 이 공부는 그러나, 그렇게 실체가 아니라는 거에도 집착하지 않아요.
불교가 사회 파탄자가 되지 않아요. 사회에서 말하는 옳은 거, 옳다고 믿고. 사회에서 말하는 전통, 존중할 줄 아나요? 불교는 내가 부처잖아요. 부처가 부처에게 절할 필요 없단 말이에요. 그렇게 황벽스님이 맨날 법문을 했단 말이에요. 부처가 부처에게 뭐 하러 절을 하느냐.
예를 들어, 이런 식의 법문을 했지만, 그러나 예불대에 나와서 부처님께 공손하게 절을 하더라는 거죠. 그 행자가 나중에 황제가 될 행자가 아니. 스님께서는 어찌 형상에다 대고 절을. 하십니까? 그렇게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그렇게 상을 깨야 된다는 거 상에 빠져도 사로잡혀도 안된다. 일상의 예법이 이러하니, 일상의 전통이 이러하니, 이렇게 한다는 거란 말이에요. 불교에서 장엄 있잖아요.
장엄 부처님, 장엄하고 탱화나 이런 걸로 장엄하고 이런 장엄문이 어디서 나온 거냐 하면 그 장엄하는 게 고정된 실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부처님의 그 놀라운 법에 대한 법을 사람들의 어떤 시선에서 이렇게 장엄해주기 위한 방편으로 그렇게 하는 거거든요. 그게 어떤 실제라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 분별의식에서 자유로워지면 고정되게 절대적으로 집착하는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싫은 것도 없고, 그냥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허용하게 돼요.
완전히 받아들이게 돼요. 자기 고정된 분별이 없어요. 분별을 다 쓰면서도 다 쓰면서도 분별을 다 내려놓고 살고, 집단적인 분별 같은 것도 자유로우면서도 그 속에서 자유롭게 그것을 쓰고 산다는 말이에요. 취할 줄 알고 버릴 줄인 사람이에요. 그게 진짜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아요. 도인들은 이상한 괴상한 일을 하고 이런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사회에서 다 생각 범주 가능할 만한 일들을 해요. 그래서 분별을 쓰면서 분별해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거예요. 이 주어진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허용하면서 산다는 거예요. 지금 이대로가 진실이니까. 이게 바로 식혼, 분별이라는 식 혼이 본래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노연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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