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에 대한 고찰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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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중도주의에 대한 고찰 2편 시작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어떤 죽고 나서 우리가 영원하냐 아니면 단멸하느냐, 뭐 부처님은 죽고 나서 어떻게 되느냐, 사후에 부처님도 있습니까 없습니까? 뭐 이 세상은 영원합니까? 영원하지 않습니까? 뭐 이런 질문에 대해서 부처님은 독화살의 비유를 들으셨죠.
윤리와 관점
독화살 맞은 사람이 독화살을 빼고 치유해야 되죠. 이게 가장 시급한 건 이걸 빨리 빼가지고 치료하는 거잖아요. 독을 빼내는 거잖아요. 그래요. 온몸에 퍼지지 않을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독화살을 맞고 난 사람이야 빼지 마, 치료하지 마. 어떤 놈이 이걸 나는 쐈는지를 알아야만 나는 그다음에 빼고 치유할 거야. 그리고 이걸 어떤 독인지에 독성분을 내가 확실하게 알고 나야만 치료할 거야. 그거 다 알려고 하다가 내가 먼저 죽지 않겠어요.
이렇게 어리석은 짓이라는 거예요. 죽고 나서 영원하냐, 단멸하냐 이런 것 어떤 특정한 교리나 이런 것들을 내가 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빨리 독화살 빼는 게 중요하다. 즉, 괴로움에서 괴로움을 해결하는 게 중요한 말이죠. 괴로움을 해결하고 나면 지금까지 내가 괴로워했던 모든 괴로움들이 실제 있는 괴로움이 아니라 허망한 망상 분별이 만들어낸 허상의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죠.
그것을 깨닫고 나면 이치가 여실해진다는 말이에요. 근데이 여실한 진리는 어떤 느낌이냐 하면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겠구나.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에요.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단 말이에요. 또 저렇게도 설명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단 말이에요. 그러나 거기에 그걸 붙잡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불교 경전의 말씀은요, 말 그대로 진리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말 그대로 진리인 게 하나도 없어요. 모든 교리나 경전에 가르침은 '아, 그렇게도 설명할 수 있는 측면이 있어', '아, 저렇게도 설명할 수 있지',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다른 편으로 보면 저렇게 설명하면 장점이 있지만 또 다른 단점이 있어요. 그래서 이런 설명의 방식은 어떤 사람에겐 도움 되는데, 어떤 사람에겐 치명적. 독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회개가 된 법문이 모두에게 다 약이 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공을 설해 줘야 되는 사람이 있고요, 어떤 사람은 허무주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요 있음을 참된 자기의 본래 면목이 실제 있다 하는 얘기를 해줘야 될 수도 있어요. 근데 있다 하는데 집착하는 사람은 있긴 뭐가 있느냐. 본래무일물이다 하고 하물건도 없다고 서류 줘야 될 필요가 있단 말이죠. 왜 그 사람이 어디에 치우쳐 있는지, 그 사람이 어떤 병에 걸려 있는지, 그거를 보고 그 사람에게 적절한 약을 줘야 되는 거거든요. 용병 요약, 병에 맞는 약을 처방하는 게 중요한 거고, 불교의 모든 법문은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거예요.
그러면 병이 난 사람에게 약이 필요할까요? 내가 감기 걸렸을 때는 감기약을 먹어야 되는데, 감기가 낫고 나서도 감기약 먹고 난 것 때문에 너무 좋아서, 그 감기약이 너무 좋아서 감격과 사랑에 빠져서 죽을 때까지 감기약을 매일 먹고 살아야 될까요?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불교 경전도 내려놓으라고 하는 거예요.
불법의 해결책
불교 경전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임시방편이라서 획일화 되게 무조건 다 먹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거는 불교는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약이다 이러잖아요. 그러니까 불교는 이동할 양식이면 어때야 돼요. 죽을 때까지 법문 듣고 살아야 돼요. 왜 일용할 양식은 안 먹으면 죽으니까. 밥은 안 먹으면 죽잖아요. 이 불교 공부는 밥이 아니라 약이에요. 약은 아픈 사람만 먹으면 되죠. 아픈 것을 법문 듣고 나았으면 더 이상 약 먹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부처님 옆에 있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절에 계속 나올 필요가 없는 거예요. 내가 부처가 되고 내가 법당이 되고 내가 도량이. 되어서, 내가 가는 곳마다 도량을 펼치고 법을 펼치고 사람들에게 괴로움에서 노연하게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뭐가 있냐면 하산해라 이런 얘기가 있죠. 공부했으면 하산해라, 너의 법을 펴라. 그게 불교의 목적이에요. 평생이 잘 나오면서 평생 이전 나오면 도움은 되겠죠. 절에는 근데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 말이죠. 왜 이것은 평생 꾸역꾸역 먹고 있는 약이 아니기 때문에 약은 임시방편으로 일시적으로 필요한 거거든요.
그래서 약을 먹고 나아서 그 건강한 몸으로 또 아픈 사람들을 구해줘라는 거예요. 그게 부처님 가르침에 핵심이다. 그러니 어떤 교리, 어떤 약이 만병통치약이 있겠습니까? 이 병에 통하는 약, 접영의 통하는 약이 다르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약 하나를 쥐고서는 내 나를 낫게 한 약이라고 해서 그것만이 책으로 가면서 이 양반을 계속 팔면 그것은 삿된 스승인 거죠. 혹은 그것을 주장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깨뜨리는 게 올바른 스승이에요. 올바른 법을 펴는 방식이에요. 자기가 얘기하고 자기가 그걸 깨야 된단 말이야, 깨는 것까지 해야 된단 말이에요.
파사현정. 그래서 특정한 어떤 것을 주장하는 게 필요하지 않다. 주의주장이 불교에서는 그것이 부처님 가슴이 핵심이 아니라는 거예요. 두 번째로, 이 제법 공상은 이 공한 모양은 어떤 또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불구부정의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까 말한 이제 그 불생불멸이라는 것은 존재의 어떤 특성이라면 불구부정, 부증불감은 불구부정하면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는 거잖아요. 어떤 질적인 차원이라면 부증불감은 약간 양적인 차원 그런 게 정해져 있지 않다라는 얘기겠죠.
예를 들어 이제 우리가 현실에서 분별을 할 때는 더러운 것도 있고 깨끗한 것도 있죠. 그죠, 분별하는 눈으로 보면, 근데 우리는 평생을 분별하면서만 살아왔죠.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더러운 거냐 깨끗한 거냐가 되게 중요하죠. 중요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자식에게 깨끗한 걸 먹이고 더러운 건 먹이지 않는 게 중요하죠.
옛날에 아이들이 산에 가서 막 흙도 집어먹고 풀도 막 뜯어먹고 아무거나 입에다 넣기도 하고 흑장 난도 막 하고 놀고 숲에서 놀았단 말이에요. 근데 지금은 숲에 가서 그렇게 놀면 어떤 느낌이 드냐면, 이 더러운 거 만지면 안 돼 이러고 지시하고 못 만지게 한단 말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어떤 걸 주냐면, 깨끗하게 살균된 것들, 모든 게 다 살균돼서 균 하나 없는 이런 걸 깨끗하다고 우리는 생각을 하고 살아요.
그런데 이걸 100%라고 할 수 있어요? 진짜 흙을 만지고 풀을 만지고 이런 것은 더러운 것이고, 살균이 깨끗하게 된 음식들, 그런 것들은 깨끗한 거다, 청정한 거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까? 그걸 실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분별에서는 그게 맞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죠, 그건 분별이 맞는 거예요.
그러나 그 분별도 진짜냔 말이죠. 그 분별이 진짜냔 말이죠. 그 한때 세계적으로 이 세균 있잖아요. 세균 질병설이라고 해서 우리가 파스텔이라고 잘 아는 파스퇴르가 질병의 모든 질병의 원인은 세균에 있다고 주장을 한 거예요. 그래서 세균이 모든 병을 가져온다 이런 식의 주장을 했던 거죠.
근데 그것은, 그거 때문에 지금 곳곳에서 세균을 없애는 것들, 그게 아주 신앙처럼 되어 있어요. 세균을 없애는 거는 아주 깨끗한 거고, 세균이 득실거리는 건 아주 안 좋은 거야라는 것이. 그래서 산업으로 자리 잡았어요. 세균이 우리를 망친다는 것이 이 돈이 되는 장사가 돼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는 칫솔 살균해야 되죠, 식기 살균해야 되죠, 가습기 살균해야 되죠. 온갖 살균기, 살균제 먹거리도 살균해야 되고, 공기도 살균해야 되고, 살균 전문 업체들이 막 아주 호황을 이루고 있지요.
즉, 우리가 옳다라고 믿었던 생각이 아닐 수도 있었단 말이에요, 우리가 깨끗하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더러운 걸 수도 있단 말이죠. 오히려 산에 가서 흙을 만지는 게 더 깨끗하고, 오히려 살균된 것이 더 안 좋을 수도 있단 말이죠. 이제 요즘에는 이런 것을 연구하다 보니까, 이제 아이 세균질병설이 거짓이라는 게 판명이 났다 그래요.
과학적으로 과학에서 그래서 이것을 이제 연구했던 학자들은 아무리 얘기를 해도 사람들이 너무 세균이 안 좋은 거다라는 게 아주 신앙처럼 잘해 잡고 있어 가지고 이걸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안 믿더래요. 그래 가지고 연구한 학자들이 수백만 마리 콜레라균이 가득한 거를 직접 마시기도 했고, 그 맛있는데, 아무리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죠.
사실은 세균 때문에 우리가 감염되고 이런 것이 아니라, 그 이제 우리, 그 세균이 있는 것은 문제가 없단 말이에요. 적당히 있어줘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이제 내 몸이 무너졌을 때, 내 몸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이랬을 때, 내 몸이 허약해지게 되면, 그때 이 세균이 안 좋은 쪽으로 발현이 되더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 몸에는 적절하게 세균도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세균이 너무 없으면, 세균수가 너무 적어지게 되면, 그 백혈구가 먹을 세균이 없어져서 정상적인 세포를 공격하게 된대요. 그래서 오히려 아토피나 자가 면역 질환에 걸리기가 오히려 쉬워지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 세균 공포증을 연구한 색은 공포증에 걸린 학자들이 있다는 거예요.
세균을 이렇게 현미경으로 보다 보니까, 세균이 득실거리는 물 같은 것들을 절대 못 먹는다는 거예요. 정말 옳다. 그러다라고 더럽고 깨끗하다고 생각했던 게 진짜 더러운지 진짜 깨끗한 건지 알 수 있느냐 말이죠. 그리고, 실제 더럽다고 한다 할지라도, 그게 우리 사람이 적당히 더러운 게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너무 깨끗하기만 하면 막 이게 막 연예인들 중에도 보면 너무 깨끗한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러잖아요. 그거는 그쪽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이겠죠.
관념의 변화
너무 과도하게 깨끗하고 막 청결해야 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과 함께 살면 살고 싶나요? 그런 사람과 함께 살면 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겠죠 그죠? 왜 그럴까요 한쪽에 극단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그렇죠. 사실은 적당히 더러움도 있어야 되죠.
우리 몸에 가장 좋은 화장품, 가장 좋은 화장품은 땀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어요? 그냥 안 바르고 적절히 땀이 나가지고, 이렇게 땀이 있는 게 좋대요.
우리는 깨끗하게 씻고 화장품을 비치는 도로 비누로 땀 같은 거는 막 완전 없애버리게 씻고 나서, 그 위에 이제 칠을 해가지고 땀이 나면 막 이거 없애 버리려고 애쓰고 하는데, 땀이 적당히 몸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죠. 이처럼 우리는 더럽다,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우리들의 관념에서 오는 것이죠.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이 더럽다, 깨끗하다는 것은 꼭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실질적으로 더럽고 깨끗한 것만을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 불구부정에서 더럽다, 깨끗하다라는 게 본래 더럼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 이 말은 뭐냐면, 아까 말한 것처럼 알 수 없다는 거죠. 모를 뿐이라는 겁니다. 이게 진짜 더러운 건지 깨끗한 건지를 알 수 없다는 거예요. 모를 뿐이라는 얘기예요. 실제로 우리가 더러운 것을 먹고 몸이 안 좋아졌어요.
그런데 그 결과, 그것 때문에 내가 더욱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죠. 그죠, 안 좋은 걸 했던 그 경험 때문에, 그 다음에 더 좋아질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그 더러운 게 나에게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나를 돕는 것일 수도 있는 거죠. 어쩌면 그래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럽게 깨끗하다가, 아까 바로 그냥 했던 것처럼, 사실은 이것과 저것이 모이면 더럽다. 이게 우리는 집을 청소할 때 보면, 지저분하다, 깨끗하다가 신기하지 않아요. 쓱 봤을 때 더러워 집이 더러워하는 것과 책 봤을 때 깨끗하다 하는 게 청소하시다 보면 느끼잖아요. 신기하게, 이게 그냥 이렇게 딱 줄만 맞춰 있어도 더럽다는. 느낌이 안 들거든요. 근데 이게 이렇게, 요렇게만 몇 개가 이렇게 널려 있으면 집안 청소도 하나가 더럽다고 생각해요.
불교에서는 청정을 되게 중요하게 여기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청정은 절대 청정성을 말하는 거예요. 우리 본성이라는 것에 절대 청정성, 즉 우리의 본성은 어디에도 오염될 수 없는 절대 청정성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는 계율을 어기고 사는 사람은 오염된 사람이고 청정하지 못한 사람이고,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은 청정한 사람이라고 방편으로 불교에서 설명해요.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방편의 계율이에요. 그러니까 유마경에서도 설하고, 우리 계율을 설할. 때도 말해요, 계율을 잘 지키라고 말하고 나서 나중에는 진짜 훌륭한 수행자는 게르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진짜 훌륭한 사람이죠.
개차법 열고 닫을 줄 아는 게 진짜 훌륭한 사람이죠. 계율을 지키는 것만 잘하는 사람은 아주 작은 수행자예요. 그래서 유망거사한테 소승불교 수행자들이 엄청 혼나잖아요. 열고 닫을 줄 모르니까 계율을 지켜야 된다는 데만 얽매여 있으니까 진짜 확연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면 계율을 지키는 사람만 청정이 아니란 말이에요.
존재, 우리들 모든 존재의 본연에 절대 청정성을 깨달은 것. 그걸 진짜 청정하다고 하는 거예요. 즉, 우리 모두는 더럽거나 깨끗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거예요. 본래는 불구부정이구나, 더러울 수도 없고 깨끗할 수도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게 진짜 불구부정이에요. 여러분은 죄를 지었어도 오염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본성은 물론 죄를 졌으면, 죄에 대한 과실을 받아요. 인과응보의 현실적 과실을 받아요. 그러나 근원에서 본질에서 죄가 없습니다. 죄무 자성 중심 기, 마음따위는 할 뿐이에요. 죄라는 게 실체가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지었다고 해서 부처가 못되냐, 그럴 수가 없습니다. 부처는 오염될 수가 없어요. 부처는 단 한순간도 오염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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